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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수학 첫 시간에 이런 얘길 하는 편이다. "고1수학에서 실생활 쓰임새 찾기 힘들거에요. 그러니까 찾지 마세요. 찾으려하면 할수록 실망할거에요." 실제로,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적 현상과 조금이라도 연결지으려면 고3 미적분쯤 되어야 하기 일쑤다. 그도 그럴만 한게, 고1,2때 배우는 건 기껏해야 다항식, 다항함수인데 우리 주변 현상은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다항함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차함수 하면 농구공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실제 우리 주변은 진공 상태가 아니라서 공기 저항에 의해 공의 궤적이 완벽한 포물선(이차함수 그래프)을 그리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 현상은 대학에 가서야 배우는 복잡한 함수들..에다가 합성함수를 끼얹고... 또 그것들을 구간별로 자르고 .. 그렇게 해도 처리가 안되서 결국 정확한 값 대신 어림값(근삿값)을 구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현상들이다. 게다가, 고1 수학의 1학기 앞부분은 실생활과 더더욱 관련성을 찾기 힘든 다항식 파트라서 괜히 학생들이 다항식이 실생활 곳곳에 직접적으로 쓰일 거란 기대를 갖고 수업을 들으면 김이 새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수분해나 조립제법 같은 딱딱한 대수적 내용들은 그 자체만으로 실생활에 응용된다기보다는 실제로 사회, 과학 분야에 쓰일 상위 학년의 수학의 밑바탕이 되는 데 의의가 있으니 조금만 참고 공부하라고 설득하는 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본론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얼마전 자동차,항공 설계 관련 일을 하는 동생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는데 고1수학으로 해결한 경험이 있었다. 고1수학이 공학에 도움이 된 일은 너무 신기하고 드문 경험이라 오히려 동생에게 고맙다고 하고, 이렇게 교육용 사례로 보여주게 되었다. 동생은 아래와 같은 도면을 보여주었다.
직선 l1은 x축 양의 방향과 15도의 각도를 이루는 직선이고 점 (40,25,0)을 지난다. 도형 l2(직선 또는 곡선)은 점 (40,23,0)을 지난다. l1, l2, y축, 직선 x=40으로 둘러싸인 부분을 x축에 대해 회전시킨 도형을 x축에 수직인 평면으로 자른 단면의 넓이가 항상 상수로 일정하게 되게 하는 직선 l2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 동생의 질문이었다. 회전체의 단면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저 단면적을 통해 공기가 일정한 압력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한다. 압력이 일정해야 하기 때문에 단면의 넓이가 늘 일정하도록 부품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l2가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나와 주면 설계가 쉬워진다고 한다. 일단 직선 l1의 식을 y=ax+b, 그리고 l2도 직선이라 가정하고 식을 y=cx+d라고 세웠다. 저 넓이가 x값이 얼마이든 항상 일정해야 한다. x값이 x일 때의 단면적을 x에 관한 식으로 세우면 아래와 같다. (단면 넓이) = (큰 원의 넓이) - (작은 원의 넓이) = pi * (ax+b)^2 - pi * (cx+d)^2 전개하여 정리하면, (단면 넓이) = pi * { (a^2-c^2)x^2 + (2ab-2cd)*x + b^2-d^2 } 이다. 이것이 상수여야 한다. 그러면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의 항등식의 성질 중 미정계수법에 의하여
이 식의 이차항과 일차항의 계수는 모두 0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a^2 - c^2 =0, ab-cd = 0. 두 식을 연립하면 (l1, l2의 기울기 부호가 다른 이상한 상황은 당연히 배제하였다. ) a=c, b=d가 나온다. 따라서 단면의 넓이가 0이 되는데, 단면을 통해 공기가 지나가야 하므로 이는 모순이다. 따라서 단면의 넓이가 늘 일정하게 되는 직선 l2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생은 l2가 직선이 되는지 여부만 알려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면 이차함수 식은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l2의 식을 x에 관한 이차식으로 두고 똑같은 방법으로 해 보았지만 이것도 불가능했다. 공간좌표, 회전체와 같은 것은 고3 기하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이지만 이 정도는 수학 교사가 충분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치고, 미정계수법을 이용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오로지 고1 수학이다.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 건너 듣기로 동생은 할 줄 몰라서 물어봤던 게 아니라 귀찮아서(?) 수학 교사인 누나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 같지만 수업 소재를 얻은 나로서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직접 하지 않고 나를 시켰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제품 하나의 설계에 이런 수학적 과정이 한 두 개가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 두 개 하라고 하면 재미있지만 제품 하나 만드는 데 이런 수학적 과정을 100여 개 해야 한다고 하면 나같아도 힘들고 귀찮을 것 같다. ^^; 늘 학교라는 조그만 공간에서 정제된 문제만 풀다가 공학자의 전쟁터 같은 수학에 경외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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