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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노출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이런 문구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서술형 항목은 교사가 직접 관찰,평가한 내용을 근거로 입력하며,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실시한 교육활동 중 교사 지도하에 학생이 직접 작성한 자료는 활용할 수 있다."
이 문구에 의하면 학생이 제출한 자료가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에 기재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실시되어야 함 2) 교사 지도하에 이루어져야 함(교사의 임장, 관찰 등) 3) 학생이 직접 작성 (과제형 불가) 학생이 집에서 개인 보고서를 작성해 교사에게 제출하고 생활기록부에 적어달라 하는 것은 조건 1),2),3)에 정확히 위배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학생들이 집에서 해 온 개인 탐구를 생기부에 적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자기 능력을 교사가 지도하는 정규 수업 시간에 보여줄 수 있도록 교사가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수학 공부 정도(수학 학업 성취도)'
를 중점으로 적는 편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제3자가 학생의 세특을 읽어보았을 때 수학 공부가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세특을 적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과 입학처에서 학생의 수학 세특에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기계에 들어가는 수학적 원리를 탐구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어할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기계공학과 전공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고등학교 수학 공부가 되어 있는 학생인지 궁금해 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작성한 세특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세특을 작성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수학2 세특에서 "간단한 다항함수의 미분계수를 능숙히 구할 수 있으며 복잡한 다항함수의 곱의 미분은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이나 정확히 구해 냄."이라고 하면 대학교 입학처에서 학생의 수학 학업 성취도를 가늠하기 적절한 편이다. 물론 학업 성취도는 내신등급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많은 대학교에서 종합전형에서 내신 등급을 보지 않고 성취도,원점수나 특기사항만으로 선발하도록 한다 하니 특기사항에 학생의 성취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글머리에 제시했던 문구에 의해, '수학 공부 정도(수학 학업 성취도)'를 특기사항에 적는 방법은 크게 1)교사의 관찰을 통해 적는 방법과 2) 학생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하는 방법, 이렇게 두가지로 나뉜다. 나는 조금 더 근거를 갖고 작성하고자(그리고 교사의 오판을 배제하고자) 방법 2)를 택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형성평가
를 활용한다. 따로 글을 적어서 설명하겠지만, 나는 형성평가 예찬론자다. 형성평가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생활기록부와 관련된 장점만 소개하겠다. 먼저 형성평가는 자주 치면 자주 칠수록 학생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식 조작 능력도 서툴고 풀이 완성도도 떨어지다가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식 조작 능력이 능숙해 지고 문제해결력이 상승하는 성장 과정이 돋보이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 한 명이 일 년간 치른 형성평가를 모아 보면 그러한 과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형성평가는 매 차시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어느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 (또는 도달하지 못했는지) 파악하기 쉽다. 미분계수를 구하는 것은 잘 하지만 이를 기하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둔한 학생들이 있다. 이런 미시적인 차이는 여러가지 성취기준이 뒤섞인 응용문제 풀이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나아가, 형성평가를 통해 학생의 성실성을 파악하여 기재할 수도 있다. 나는 형성평가를 칠 때 교과서를 참고하여 보면서 치게 하는 편이다. 당일 배운 내용을 집에 가서 복습도 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을 그런대로 들었다면 모두가 맞힐 수 있는 거저 주는 문제를 내는 편이다. 문제는 교과서를 참고하고도 거저 주는 문제에 백지를 내거나 터무니없는 답을 적는 학생들인데, 문제 난이도가 매우 쉽기 때문에 이런 학생들은 수학적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한 두번이라면 모를까 수시로 백지를 내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달래기도 하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가 개선되지 않으면 나중에 세특을 거의 빈 칸으로 두는 편이다. 아직까지 그런 학생은 없었지만 만약 찾아와 항의한다면 학생이 그간 제출했던 백지 형성평가를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그간 제출했던 형성평가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려면 교사가 학생의 형성평가를 모아두어야 한다. 그런데 형성평가의 순기능 중 하나는 학생에게 수시로 피드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은가. 즉, 형성평가 결과를 학생에게 제깍제깍 돌려주어 피드백하면서 동시에 연말까지 교사가 형성평가를 모아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의 경우에는 형성평가를 칠 때마다 채점을 한 후 사진을 찍어 학생별로 모아두는 편이다. 이 사진은 학생 1명의 연간 형성평가 결과물이다. Microsoft OneNote를 이용해 전교생의 형성평가 (그 외 제출물 포함)를 모아두었으며 학기말에 누적된 결과를 보고 있으면 학생이 그간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한 눈에 파악하기 쉽다. 물론 쉬는 시간마다 계속 사진을 찍는 수고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물론 형성평가만으로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것은 무리이다. 형성평가로는 학생의 성취기준 도달 여부를 파악할 순 있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 유용성 인식, 창의성, 수학적 의사소통역량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창의성을 잘 발견하고 싶었다. 획일화된 내신시험체제에서 가장 키워내기 힘든 역량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발산적 사고를 창의성이라고 평가하는 오류는 범하고 싶지 않았다. 교사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하나의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풀려고 시도'한 경험을 창의성으로 평가
하는 편이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니 창의성의 요건 중 하나인 유창성을 충족하고, 이를 통해 실제 문제를 해결해 내었으니 터무니 없는 방법이 아닌 것도 입증되는 셈이다. 교과서 문제 중에는 잘 살펴보면 2,3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교사가 미리 깊이 교재연구하여 여러 방법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를 몇 가지 파악하여 수업 시간에 발표를 시키거나 질문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학생에게 발표를 시키고 자신의 발표 내용을 용지에 잘 정리하여 제출하라고 하는 편이다. 이 제출물 역시 사진을 찍어 보관해 둔다. 아래 사진의 경우 틈나는 대로 여러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했던 학생의 제출물이다. 한 두 번 일회성으로 여러 방법으로 푼 학생에게는 창의성이 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이 여러 번 관찰되는 학생은 누가 봐도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학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을 세특에 남기는 편이다. 여기까지 학생의 장점을 교육과정, 수업, 평가를 기반으로 생활기록부 세특에 '기록'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특히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의거하여 원칙대로 기재하면서도 동시에 학생의 세특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았다. 교사마다 방법은 다양할 것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고 아닌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록'에 있어서 어느 방법이든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하는 것 같다.
교사가 기록에 있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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