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4. 작년 수업나눔에서 공통적으로 들은 피드백은 서로 편하게 묻고 답하며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하라는 것이었다. 25.3.16. 사실 지금은 부서 업무가 처음이고 일이 많을때라 여러모로 바쁘다. 수업에 온전히 몰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형성평가를 치르고 일일이 채점해 사진찍고 보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년 하니 이제 관성이 생겼다. 업무가 바빠도 수업을 놓치지 않고 루틴을 이어가는 나 자신에게 속으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할 겸하여 글로 적어둔다. 25.3.20. 최근 3일에 걸쳐 지수함수찾기 활동을 진행했다. 교과서 속 정제된 문제와 달리 실제 현상을 수학화하는 것은 숫자도 과정도 복잡함을 충분히 안내했다. 걱정과 달리 우왕좌왕하지 않고 수업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함수식을 적는 대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했다. 공학도구 제작 시 지수함수의 밑을 e로 고정시킬 수 밖에 없어 학습지에 e^x라는 표현을 쓸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혼란을 준 것 같다. 2.7^x라고 했어야했다. 비록 간단한 질문이지만 한 학급에서 다섯명 정도가 동시에 질문해대니 교사인 나 또한 스텝이 꼬였다. 질문을 한 다섯명은 나보다 더 답답했을 것이다. 학습지의 작은 표현 하나의 명확성이 수업의 원활한 진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지수함수 현상 주제로 주식 가격을 택한 것도 아쉽다. 인구 수 증가 추이, 미생물 번식 추이, 실업률, 물가상승률 등 다양한 소재를 택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교사가 주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예시를 들어주면서 다른 것은 간략히만 소개해서 그렇다. 과학실험 데이터나 경제지표 변화 데이터는 kaggle이나 공공포털을 통해 얻은 후 적절히 가공해서 학생들이 탐구하기 편하게 제시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현상을 지수함수로 수학화하는 과정을 수업으로 만들고 이에 필요한 공학도구까지 내 힘으로 제작한 것은 내심 뿌듯하다. 25.3.21. 왜 내 강의력이 형편없는가를 고민하던 어느 날. 내가 몸을 너무 쓰지 않는 점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 의식적으로 상체의 움직임을 크게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정적으로 움직이는 오랜 습관이 있어서 금세 통나무로 돌아가지만 최대한 중요한 설명을 할 때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도 보고 팔을 크게 휘저어 보려 한다. 오늘은 지수함수 평행이동을 설명하면서 점프를 했다. 확실히 이목이 집중되었다. 너무 산만하지 않게, 너무 연극적이지 않게, 앞으로도 적절한 신체 움직임을 동원해야겠다. 25.3.22. 2년차 때 전출교사 송별회였다. 섬 지역으로 발령 나 떠나시는 교무부장님이 술김에 내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하셨다. "날고 싶어 안달난 게 눈에 보여서 날개를 달아주라고 너희 부장한테 그렇게 얘기했는데. 내가 니 얼마나 신경썼는지 모르제." 평소 전혀 교류가 없던 교무부장님 눈에 날고 싶어 환장한 걸로 보일 정도면 얼마나 내가 인정에 목마른 것으로 보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해도, 교직 경력 30년차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이제 나도 십년차에 접어들었다. 그저 무사안일한 교사로만 남기 싫어 수업나눔도 하고 공학도구도 개발하고 교육과정에 근거한 수업과 평가 일체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치와 노하우가 쌓였다. 그리고 그 부장님의 말씀이 맞았다. 나는 내 노하우를 인정받기 위해 외부 수업나눔도 하고 연수 출강도 했다. 얼마 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여기 밝히기 어렵지만 그게 무산되었다. 솔직히 안타까웠다. 내가 나를 평소 더 어필했더라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욕심이 끝도 없이 생겼다. 욕심이 풍선 불듯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곧 누르고 평정심을 되찾으려 가다듬으면서 생각해보았다. 자기를 어필하려는 것이 그릇된 욕심인가? 너무 탐욕적이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자기 포장은 필요함을 느꼈다. 묵묵히 조용히 열심히 해도 다 아는 줄, 챙겨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직장에서는 누구도 내 밥그릇을 대신 챙겨 주지 않더라는 것을 느꼈다. 내 껀 내가 챙겨먹어야 하는구나. 노력하는 것 이상을 가져가려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노력한 만큼을 챙겨먹는 것은 정당한 포트폴리오 구축의 일환일 것이다. 놓치고 안타까워 하며 미련을 갖느니, 전문성과 노하우를 정당하게 어필하고 요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2025.4.2. 칭찬의 힘. 나는 운동을 배우고 있다. 내가 자세가 좋아지거나 바벨 무게가 증가하면 트레이너 선생님이 어김없이 칭찬을 해준다. 등을 터치해주면서 칭찬해주는데 그게 살짝 부담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확실히 보상이 된다. 수업에서 나는 칭찬을 잘하지 않았었다. 내 설명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학생 관찰에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칭찬할 만한 학생들이 눈에 띈다. 그럴 때 나 역시 어깨나 등을 살짝 터치하며 칭찬해보았다.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 하면 돼"와 같은 말과 함께. 학생들의 눈빛에서 아직 학기초라 수줍음을 동반한 기쁨이 보였다.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조언은 2021년부터 들었었는데 이제야 실천해본다. 나는 누군가의 조언을 늦게 깨닫는 어리석음과 늦게라도 깨닫는 미약한 똑똑함을 다 갖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2025.4.3. 내가 수업 시간에 허락하지 않는 행동 중 하나는 엎드려 자는 일이다. 예전에는 학원 숙제를 풀거나 영단어 외우는것도 뺏았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엎드려 자는 것만큼은 허락하지 않는다.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에 서 있는 선생님께 '나는 당신의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학생들에게 첫 수업부터 강조했다. 그리고그런 학생들은 뒤로 내보내서 키다리책상에서 최소 5분은 잠을 깨고 들어오게 한다. 하지만 늘 어김없이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런 학생들은 십년 전에도 존재했다. 그런데 십년간 그 양상은 조금 변했다. 일단, 옛날에는 자는 학생을 깨웠을 때, 다들 금방 일어났던 것 같다. 흔들어 깨울 것도 없이 어깨만 툭툭 건드려도 벌떡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흔들어 깨워도 요지부동인 학생들이 많다. 그중 일부는 내가 흔들어 깨운 것을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학생이 없었던 것 같다. 두번째로는, 예전에는 뒤로 나가 서서 수업을 들으라 하면 다들 지체 없이 뒤로 나갔었는데, 요즘은 끝까지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뒤로 나가지 않고 버티는 학생들이 있다. 뒤로 나가라고 세 번을 이야기하는데 나가지 않으면 그 때부터는 기싸움이 된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패널티 또한 정당한 교수법 중 하나라고 대학에서 배웠는데 요즘 사범대에서는 다르게 가르치는지,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내 교수법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하는 것인지, 내가 틀린 것인지 고민이 된다.
전송